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로마 제국/역사 (문단 편집) === [[니키포로스 2세]] (963~969) === 10세기 중반에는 [[함단 왕조]]의 사이프 앗 다울라(Sayf al-Dawla)가 제국의 확장을 저지했고 일시적으로 제국과의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었으나 950년 전투에서 사이프가 이끈 3만 명의 군대가 제국군의 협공을 받아 궤멸되었고, 958년과 960년의 공세도 잇달아 실패로 돌아갔다. 오히려 962년 [[니키포로스 2세]]의 군대가 역습을 가해 함단 왕조의 수도인 베로에아(헌 [[시리아]]의 [[알레포]])를 함락했으며[* 이 곳은 점령하지는 못했다. 수도인 만큼 점령하려면 함단 왕조 자체를 멸망시켜야 하는데 그럴 정도의 국력은 없었다.] 이후 함단 왕조를 속국으로 삼고 제국에 대한 몇몇 의무를 규정한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Treaty_of_Safar|사파르 조약]]을 맺었다. 또한 제국은 961년 [[크레타]]를 수복하였으며, 965년에는 킬리키아 일대와 [[키프로스]], 969년에는 고대 5대 [[총대주교]](Pentarchy) 소재지였던 [[안티오키아]]까지 수복하였다. 불과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크레타, 킬리키아, 키프로스, 안티오키아 등 주요 포인트를 성공적으로 수복했다. 이를 기점으로 아랍 해적들의 활동이 크게 줄어들면서 에게 해 일대가 크게 번성할 수 있게 되었다. 유명한 클리바노로포스도 이 시기에 운영되기 시작하는데, 이 용도는 동로마 군대와 유사했던 함단조의 보병대열을 분쇄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(마찬가지로 함단 왕조도 얼마 안되어 클리바노로포스를 도입했다). 유럽에 있어서 니키포로스 2세는 내부 분열로 휘청거리던 [[불가리아 제1제국]]을 [[키예프 루스]]가 하여금 침략하도록 사주하였으나, 불가리아 제1제국을 접수한 키예프 대공 [[스뱌토슬라프 1세]]가 곧바로 제국의 영토로 밀고 들어와 전면전의 위기에 이르게 되었다. 단 니키포로스 본인은 이러한 군공을 본인과 정권의 인기와 지지도로 환산할 정치력이 부족하여, 960년대 팽창기를 이끈 황제치고는 허무하게도 조카인 요안니스 치미스키스에게 암살당하는 최후를 맞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